하오여행

처음에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4박5일 동안 내몽고를 간다는 소리를 듣고 뛸 듯이 기뻤다. 5월이 되면서부터 수학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가서 뭐하며 놀까, 어떤 추억들을 쌓게 될까, 무엇을 보게 될까, 이런 저런 행복한 고민을 하여 공부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내몽고로 출발하는 5월16일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학교는 학생들의 흥분과 열기로 떠들썩했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내몽고 얘기가 나오기 일쑤였고 서로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목록을 적기도 하였다.

수업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선생님들께선 수학여행 갈 때까지 내몽고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벌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셨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그 뜨거운 열기를 품에 안고 5월 16일. 우리는 내몽고로 출발했다.

내몽고의 수도인 호화호트로 가는 1시간 40분 동안 우리는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도착 후,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 가이드 안내에 따라 라마교 사찰 “대소사”로 향하였다. 대소사의 자랑은 2.5m의 순은 불상을 감상하고 금으로 된 원통들이 있었는데 벽을 따라 걸으며 이것들을 돌리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돌리면서 마음속으로 나의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기념품관에서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내몽고의 돈을 사고 그곳에서 나왔다. 돈으로 돈을 산다는 것은 좀 이상할 지 몰라도 이와 내몽고에 온 김에 내몽고에 갔다 왔다는 증거를 남겨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호텔로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몽고에서 맞은 둘째 날은 내 생애에 잊지 못할 하루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우리가 기대하던 시나무런 초원으로 떠나기 전에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내몽골 박물관을 갔다. 내몽고 박물관은 내몽고의 고생물과 원시인에 대해 전시한 “고생물 전시실”, 내몽고 지역의 여러 부족의 문화를 다룬 “내몽고 민족문화재 전시실”, 소수민족 문물을 다룬 “역사 전시실”, “근현대 전시실” 등의 크게 4가지 주제로 운영된다.

특히 내몽고 박물관은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 보존되어져있는 매머드의 화석으로 매우 유명하기 때문에 전부터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박물관이었다. 1층부터 2층을 넘어 천장까지 닿는 매머드의 거대한 크기는 웅장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뼈대만 봐도 이렇게 웅장한데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나는 그 앞에 서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고생물 전시실과 함께 마음에 들었던 내몽고 민족 문화재 전시실은 몽골인의 전통 생활 방식을 소개하는 소박한 곳이었다. 이 전시실에서는 거대한 파오와 마유차를 만드는 법, 전통 복장 미니어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몽고 지역이 중국화된 것이 20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듯, 흉노왕의 왕관, 몽골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인장 등 비중국적인 유물들이 가득했다. 박물관이 너무 커서 발이 부어오를 정도였지만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행복했다.

평소에도 역사나 전통과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기에 비록 몸이 힘들었어도 내몽고 박물관은 즐거운 곳이었다. 하지만 시나무런 초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시나무런 초원까지 가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이다. 한국이었다면 너무 멀다고 생각했을 지 몰라도 중국 생활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옆 동네에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초원에 들어서자 유목민들이 말을 타고 나와 우리를 환영했다.

갔을 때는 풀이 많이 날 시기가 아니어서 흙 위에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볼썽사납고 약한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보는 초원이란 생각에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유목민 중 한명이 담임선생님께 몽고술을 살짝 권하였다. 내가 알기로는 애든 어른이든 초원에 가면 몽고술을 권하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만 권하자 뒤에서 은근히 실망을 하는 남자 아이들이 보였다. 그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가 하루동안 묵을 몽골포로 가서 짐을 풀었다.

깨끗하지 않은 환경에 살짝 실망을 하긴 했지만 기대는 하지도 않았기에 그저 유목민의 전통 집에서 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기뻐하였다.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근데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좋은 옌타이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거친 바람에 당황한 우리는 마스크에 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말을 타기 위해 나갔다.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기 위해 대기하자 아저씨들이 우리를 마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나는 굉장히 온순해 보이는 갈색 말을 골랐다. 확실히 내가 본대로 내 말은 매우 온순했다. 때문에 내 친구의 말이 옆에서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거나 날뛰어도 내 말은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온순해서 좋았지만 초원 위의 질주를 상상했던 나는 은근히 실망스러웠다. 모래바람마저 맞으면서 말을 탄 후에는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다시 유목민의 집을 방문해야한다는 말을 절망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말을 타고서가 아니라 1시간 가까이를 걸어서 우유차를 대접 받고 다시 몽골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원하던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가니 우리를 환영하기위해 무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목에 수건을 걸어주었다. 원래는 수건위에 몽고술을 담아서 대접하지만 우린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수건만을 걸어주었다.

밥을 다 먹으로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는 소리에 우리는 모두 밖으로 우르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밤하늘에 별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 심지어는 공기 좋은 옌타이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에 다들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에 다들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카메라에는 담을 수 없었다. 다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정말 흑요석같이 까만 하늘을 바라보다 급격히 추워진 초원의 날씨를 깨닫고는 급히 캠프파이어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목민들의 신나는 무대를 즐기고 캠프파이어 주변에서 교사, 학생이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았다. 밤이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선생님들의 통솔하게 우리의 몽골포로 돌아갔다. 밤새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문이 덜컹거리고 새벽에 추웠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편하게 보냈던 밤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자고 친구들과 약속했지만 전날 다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그만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리의 단 한번뿐인 “초원에서 일출 바라보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게다가 늦잠을 자서 룸메이트와 나는 아침밥 먹을 시간도 놓쳐서 주린 배를 감싸고 차에 올랐다.

셋째날, 우리의 첫 코스는 쿠부치 사막! 전날과 마찬가지로 흥분된 마음으로 4시간 거리인 쿠부치 사막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나오는 건 감탄뿐이었다. 정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사막이었다. 난 정말로 사막의 모래 입자가 그렇게 고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가까이서 본 낙타는 굉장히 순해보였다.

나와 친구들은 낙타를 보며 너무 귀엽다고 웃다가 어느 한 장면을 보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낙타의 코에 메어져있던 나무 막대기와 병뚜껑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고 그들의 혹에 박힌 못을 보고는 타기가 너무 미안해졌다. 낙타를 타고 짧은 사막 횡단을 하며 아름다운 하늘과 사막의 모습을 사진을 찍으며 즐기다가도 낙타의 봉을 보면 우리 인간들 때문에 아파하는 그들의 모습에 미안해지고 슬퍼졌다.

여행 중에 차안에서 케럴 오프의 “나쁜 초콜릿”을 읽었는데 낙타들을 보자 초콜릿과 커피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나쁜 초콜릿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코 달콤하지 않은, 씁쓸한 초콜릿의 진짜 역사를 만났다. 우리에겐 낙타와 초콜릿, 커피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즐거움이지만 이 짧은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가.

그저 즐기려고 갔던 내몽고의 사막에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가 즐기는 모든 것에는 또 다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는 씁쓸한 깨달음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징기즈칸 능을 마지막으로 내몽고에서 재미있었지만 의미 있었던 4박5일을 보내고 옌타이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옌타이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그 비는 우리 제2의 고향, 옌타이로 돌아온 우리를 환영하면서 마음속에 끼였던 먹구름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