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사(白马寺)는 한(汉)나라 때인 서기 64년에 건설되었는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古刹,역사가 긴 절간)로서 ‘중국 제일 고찰’이라고 불린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불교가 중국의 한나라 때에 인도에서 전해오기 시작하였으며 당시의 임금인 명제(明帝)가 진경(秦景)을 사신으로 파견하여 인도의 고승 니에무어텅, 쭈파란을 모셔왔다고 한다. 고승 니에무어텅과 쭈파란이 중국에 도착한 뒤, 현재의 낙양(洛阳) 백마사(白马寺)에 거주하였으며 불교문화를 전 중국으로 전파하였다고 한다.
 백마사(白马寺)는 낙양시에서 동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는데 약 2000년 전, 불교가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전파되어 오면서 처음으로 세워진 절이다. 백마사(白马寺)는 일명 금강아사(金钢崖寺)라고도 불렀는데 전쟁에서 불타고 있는 금강아사(金钢崖寺)를 흰 말이 구해주었다고 하여 백마사(白马寺)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한나라 때, 최초로 건설한 백마사(白马寺)는 절간의 규모가 컸으며 건물마다 다양한 특색을 가져 예술적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근 2000년 간에 여러 차의 전쟁을 겪으면서 막대하게 파괴되었으며 그 뒤로 다시 보수건설 하였으나 많은 건축물이 이미 한나라때의 옛 모습을 잃었다고 한다.
현재의 백마사(白马寺)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장방형의 뜰 모양을 하고 있으며 총면적이 4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현관 밖에는 최근에 세운 돌패방(石牌坊), 방생지(放生池), 궁형 돌다리가 있으며 현관 양측에 송나라 때의 돌말(石马)이 서있어 중국 고대의 뛰어난 석각 예술 수준을 자랑한다. 백마사(白马寺)의 현관은 3개의 아치형 대문으로 구성되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고난을 벗어나는 3겹의 문을 의미하며 한나라 때의 훌륭한 건축기교를 보여준다.
절간 내에는 천왕전(天王殿), 대불전(大佛殿), 대웅전(大雄殿), 접인전(接引殿), 비노전(毗卢殿) 등으로 5개의 웅장한 본당이 앞뒤 한 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다수의 건축물이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에 각기 보수건설한 것이다. 비노전(毗卢殿)은 청량대(清凉台) 위에 지어졌는데 당시, 니에무어텅 스님과 쭈파란 스님이 이 곳에서 중국의 첫 번째 불경인 불설42경을 번역하였다. 또한 한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비석 40여 개가 세워져 있는데 비석 위에는 한나라 때로부터 현재까지의 백마사(白马寺)에 관련된 역사가 새겨져 있다.
제운탑(齐云塔): 제운탑(齐云塔)은 또 석가사리탑(释迦舍利塔)이라고 부르는데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세운 탑으로 한나라 때에 건축하였다. 제운탑(齐云塔)은 총 35미터 높이에 13층으로 나뉘어 졌는데 백마사의 현관에서 동쪽으로 30미터 떨어져 있어 가장 주목을 받던 곳이다. 소문에 따르면 제운탑이 전에는 목탑 이였는데 당(唐)나라 말기의 전쟁에 불타버렸으며 금(金)나라때, 다시 석탑으로 쌓아 올려 지금까지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다고 한다.
청량대(清凉台): 청량대(清凉台)는 백마사의 뒤쪽에 위치하는데 길이가 42.8 미터, 너비가 32.4 미터, 높이가 6.5미터에 달한다. 전설에 따르면 청량대는 원래 한명제(汉明帝)가 더위를 피하면서 독서하던 곳이었는데 진경(秦景)이 인도에서 돌아오면서, 니에무어텅 스님 및 쭈파란 스님과 함께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며 연구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백사고종(白寺古钟): 낙양(洛阳) 8대 경관의 하나인 백사고종(白寺古钟)은 당(唐)나라 때에 이미 유명한 경관으로 소문이 퍼졌으며, 현재에 와서도 그 독특한 매력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백마사(白马寺)의 동남쪽과 서남쪽 구석에 각 1개의 각루(角楼, 담벽에서 높이 솟아난 건축)가 있는데 동쪽의 각루에는 큰 종(钟)에 걸려 있다고 하여 종루(钟楼)라고 부르며 서쪽의 각루에는 큰 북을 걸렸다고 하여 북루(鼓楼)라 불렀다. 수 천년 동안 내려오면서 백마사(白马寺)에는 매일 아침이 되면 종루의 종이 울리며 저녘에는 북루의 북이 울린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백마사(白马寺)의 종이 울릴 때마다 25리 떨어진 낙양성(洛阳城) 내의 고종(古钟,옛 종)이 함께 울리며 신기하게 공명을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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