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은 청나라 때 부터 전해져 내려온 중국 10대 명차 중 하나로 향이 짙고 맛이 부드럽다.
주로 안후이 황산(安徽省黄山)에서 재배되는 찻잎을 수확해 만든 녹차를 말하는데 후이차(徽茶), 황산윈우차(黄山云雾茶)라고도 불린다.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은 찻잎에 작은 털이 나 있어 백차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천연발효시키는 백차와 달리 효소작용을 억제한 녹차로 분류된다.



명나라 시기에 기록된 역사저서 차수(茶疏)에는 천하 명산에는 영험한 풀이 난다(天下名山 必产灵草)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영험한 풀은 차를 말하는데 중국 4대 명산중 하나로 손꼽는데 황산 인근의 후이저우(徽州)는 치먼훙차(祁门红茶), 황산마오펑(黄山毛峰), 타이핑화쿠이(太平花魁)와 같은 명차가 나는 차 재배산지로 유명하다.
안후이성 역사를 기록한 후이저우푸즈(徽州府志)에 따르면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은 송나라(1056년~1063년)시기에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였는데 윈우스(云雾寺)라는 절의 스님들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윈우차(云雾茶)라 불렀다.
명나라 말기에 와서 황제에게 바치는 공물이 되면서 왕궁귀족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지만 만드는 방법이 번거롭고 생산량이 적어 룽징차(龙井茶), 비뤄춘(碧螺春)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 후 청나라 시기에는 세징허(谢静和)라는 농장주가 이곳에서 차 재배를 시작하면서 윈우차(云雾茶) 가공 업자들이 크고 작은 규모로 늘어나면서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5년, 중국 정부가 주최한 녹차 전시회에서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을 중국 10대 명차로 선정하였으며 현재까지 10여 개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명나라 시기, 중국 강남 이셴(黟县)에는 갓 부임한 슝카이위안(熊开元)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어느 봄날, 그는 마을에 부임한 기념으로 황산구경을 떠났다가 길을 잃고 산을 헤매게 되었는데 우연히 늙은 스님을 만나 윈우스(云雾寺)라 부르는 사찰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스님은 슝카이위안(熊开元)에게 차를 대접했는데 찻잎이 평소에 마시던 찻잎보다 옅은 색을 뜨고 흰 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었다. 찻잎을 조금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찻잎이 빙그레 돌면서 위에 떠오르는 것이 마치 한 송이 연꽃과 같은 모습으로 그 향이 온 사찰에 가득했다고 한다.
슝카이위안(熊开元)은 스님에게서 그 차 이름이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이라는 것을 듣고 이튿날 마을로 내려갈 때 스님은 황산마오펑(黄山毛峰)차와 맑은 샘물 한병을 선물로 주면서 황산마오펑(黄山毛峰)차는 샘물을 사용해야만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무사히 집에 돌아온 그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스님이 준 황산마오펑(黄山毛峰)을 꺼내 자랑 하게 되었고 친구들도 향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얼마 후, 상경하게 된 슝카이위안(熊开元)의 한 친구가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슝카이위안(熊开元)에게 얻은 황산마오펑(黄山毛峰)를 황제에게 공물로 바쳤다. 향이 깊다는 말에 황제는 부하를 시켜 차를 대령하게 했는데 향기가 없는 밋밋한 맛의 차였다고 한다.
이에 황제는 크게 노하며 추궁을 하자 친구는 궁여지책으로 슝카이위안(熊开元)이 황제게 드린 공물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황제는 슝카이위안(熊开元)을 입궁하라 명하고 친구의 거짓을 알게 된 그는 황제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황산 샘물을 가지고 궁을 떠났다.
슝카이위안(熊开元)은 윈우스(云雾寺)에 스님을 찾아 자초지종을 말하고 황산 샘물을 얻어 황궁에 돌아온 그는 가져온 샘물을 끓여 찻잔에 부었더니 방에는 은은한 향기가 진동했다.
이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면서 슝카이위안(熊开元)에게 높은 벼슬을 줄 것을 약속했지만 슝카이위안(熊开元)은 관복을 벗어 버리고 황산 윈우스(云雾寺)에서 스님이 되었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황산 윈우스(云雾寺)에는 정즈( )스님이라고 되어 있는 묘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 묘의 주인이 바로 슝카이위안(熊开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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